≪DonginDongin-linked≫: Urbanism, Art Activism, Democracy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 어바니즘, 미술행동, 민주주의 /김기수
1. 대구미술계: 도시공동체 미술과 행동주의 미술
대구 지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도시공동체 및 행동주의 미술 그룹이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재개발지역 ‘동인아파트’에서 2018년부터 약 2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추진해온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결정체를 ≪동인동인(東仁同人)- linked≫(이하 ≪동인동인≫)이란 제명으로 전시했다(그림 1).1 그들은 실로 다양한 분야, 즉 회화, 드로잉, 설치, 사진, 영상, 서예, 탁본, 뉴미디어 등을 포괄하는 시각예술가로부터 거리연극, 인형극 등의 공연예술가, 그리고 인문학자, 르포작가, 외국 작가 및 아파트 주민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정확하게 반세기의 일기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동인아파트(1969-2020)의 궤적이 우리 모두(즉 주민, 시민, 예술가 등)에게 던져놓은 어바니즘(urbanism)의 문제를 예술적, 생태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기록하기 위해 모였던 것이다. 일부는 여러 매체를 활용해 동인아파트의 역사를 아카이브했고, 일부는 사진, 삽화, 시집, 텍스트, 영상, 설치 등의 작업으로 동인아파트와 그 주민 및 인근 환경의 문제를 다룬 전시회를 열었고, 어떤 예술가는 무료로 ‘동인아파트에서 하루 밤 잠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고, 한 무리는 재개발 지역과 그 주민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다룬 슈프레히콜2이라는 시위연극을 공연했고, 또 한 무리는 아파트에 서식했던 히말라야시다와 백로를 주제로 생태인형극을 펼쳤고, 몇몇 작가는 아파트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다양한 연 령(즉 노인, 청소년, 아동)의 주민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며, 용기와 힘을 북돋우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공동체 및 예술행동 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 것인가? 이 연구는 이들의 예술적 실천을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주요 장르로 다뤄지는 도시공동체 미술과 행동주의 미술의 맥락에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확신하며, 따라서 글로벌 아트와 한국 및 대구 현대미술의 담론의 지평에서 접근할 것이다.3 이러한 현대미술의 담론의 접근 방법에 따르면, 지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artist collective)인 ‘로컬포스트(Local Post)’를 이끌고 있는 시각미술가(김미련)가 지역 내외의 여러 미디어 아티스트와 회화, 드로잉, 설치, 영상, 사진 예술가들과 합세하고, 동인아파트 인근에서 서예도서관을 운영하던 서예활동가(민승준), 동인아파트에 입주하여 지역의 주민들의 삶을 기록해온 르포작가(서분숙)와 인문학자(정승원), 슈프레히콜이라는 집회형식의 전위연극을 통해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연극연출가(이현순), 버려진 그림책, 인형, 장난감들을 재활용해 인형극과 전시회를 기획해온 ‘37도 정크아트 협동조합’(양민경) 등과 협업하며 ≪동인동인≫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 탈장르, 융복합을 지향해온 현대미술(즉, 컨템퍼러리 아트)의 맥락에 비춰볼 때 - 지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4 그리하여 이 논문은 ≪동인동인≫의 다양한 예술적 프로젝트들의 의의와 문제를 현대미술의 담론과 실천의 맥락에서, 특히 도시공동체 미술과 행동주의 미술의 주요 이론과 쟁점을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선 도시공동체 미술과 행동주의 미술이 현대미술의 미술사적 발전의 계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어떤 동시대 이슈나 철학적 담론과 함께하며 발전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모든 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왔겠지만 지난 세기 동안 미술(art)만큼 급진적으로 변화해온 분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지난 150년 동안 미술의 패러다임은 크게 두 번 바뀌었다. 첫 번째는 외부 세계의 재현을 목적으로 했던 아카데믹 아트(Academic art)가 19세기 중후반 사진이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급속도로 퇴조하고 외부 세계와 관계없이 새로운 심미적 형식의 창조에 몰두했던 모던 아트(Modern art)가 지배하던 시기(1860s-1950s)로의 전환이고, 두 번째는 격동기의 참상을 외면했던 형식주의 모던 아트를 버리고 양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몰고 왔던 산업문명, 자본주의, 모더니즘 등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하며 새로운 철학적, 문화적, 예술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려 했던 기류에 동참하며 등장한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의 시대(1960/70s-현재)로의 전환이다. 요컨대, 미술의 패러다임은 미술사적으로 이차세계대전 이래 1960, 70년대를 거치며 스튜디오 아트(Studio art)로 지칭되는 심미적, 형식적 모더니즘 예술로부터 포스트스튜디오 아트(Post- studio art)로 일컫는 개념적, 비판적 컨템퍼러리 아트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술의 패러다임의 미술사적 전환은 오늘날 미술가들의 문제의식, 접근방식, 제작방식 등에서 근본적 전환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형식주의 모더니스트 미술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은 - 포스트스튜디오 아티스트로서 - 상아탑(스튜디오)의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로 눈을 돌려 지역의 현안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전시공간의 측면에서도 제한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적 공간(미술관)보다는 보다 많은 시민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리, 광장, 공원 등의) 공적 공간을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미술가(즉 포스트스튜디오 아티스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동시대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비판적 태도이다. 오늘날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동시대 사회나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식은 대개 대중매체(즉, TV, 라디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신문, 영화, 잡지 등)를 통해서이고, 인식이나 태도 또한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한다.5 이러한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미술가가 우리 사회나 현상에 대해 어떤 ‘새로운’ 시선이나 감각을 촉발하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사회의 작동방식에 대해 (대중매체보다 훨씬) 깊은 통찰을 전제하게 된다.6 이것이 왜 현대미술이 동시대 철학이나 문화이론, 사회학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는가의 배경이고, 왜 현대미술이 개념적, 비판적, 정치적 성향을 띠는가의 이유이고, 왜 현대미술의 교육방식이 이론 및 토론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고, 왜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현대미술가가 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가의 이유이다.7
이렇게 볼 때, 현대미술의 역사적 맥락에서 도시공동체 미술과 행동주의 미술이 출현한 시대적 배경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점차 팽창되어온, 특히 1989년 이후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전 지구가 급속도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되면서 도시생태계, 도시공동체,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지게 됨에 따라 수많은 동시대 미술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도시 지역과 장소에 개입하여 다양한 예술적 프로젝트를 창안, 실천하며 지역의 도시공동체 주민들에게 자생력과 자존감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계에서도 21세기에 들어 다양한 형태의 현실 참여미술, 즉 공공미술, 공동체미술, 행동주의 미술 등이 진행되었다.
이광석은 <옥상의 미학노트> (2016)에서 2000년 중반부터 2015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이 땅에서 펼쳐진 다양한 형태의 도시공동체 및 행동주의 예술의 실천들을 발굴하고 분석한 바 있다. 이를테면, 아티스트 콜렉티브로서는 리슨투더시티, 옥인콜렉티브, 믹스라이스, 연분홍치마, 디자인얼룩 등이 있고, 행동주의 예술가로는 김강과 김윤환의 스쾃예술행동, 신유아의 코뮨을 위한 희망버스와 농성장 프로젝트, 노순택, 임흥순 등이다.8 이러한 맥락에서 대구미술계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양적, 질적 빈약함에도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실천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지역의 현대미술 단체인 ‘온아트’와 ‘디카’가 2014년 대구광역시 도심의 거리, 지하철역 등에서 펼친 대구지하철참사 11주기기획전과 지역의 미디어 및 행동의 미술가 그룹인 ‘로컬포스트’가 최근 청도 삼평리와 성주 소성리에 예술가들을 파견하여 현지 주민들과 함께 펼친 송전탑건설반대와 사드배치반대 프로젝트 등이 있다.9
2. 현대미술과 어바니즘: 공적 공간과 민주주의
우리는 이제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도시공동체 및 행동주의 미술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철학적 담론과 이론적 쟁점을 소개하고, 이에 의거하여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의 의의를 논의할 차례이다. 동인(시영)아파트는 1969년 지어진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13평짜리 5개 동에 190여 가구가 살고 있다(그림2). 2017년 조합(대구 동인시영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 설립인가가 났고 같은 해 12월 동인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재건축이 결정되었다. 한때 3백 세대가 넘었지만 재건축 확정 후 이주민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고, 2020년 6월 재건축 공사가 착공되기 전까지 이주․철거는 완료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건축 확정 후 아파트 시세가 1억 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싼 값에 아파트에 살고 있던 고령자․저소득층 주민들이 갈 곳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전체 가구 40%는 보증금 100만원 월세 5~20만원 세입자고 25%는 기초수급자다.10 하지만 도시재개발 정책자 및 실무자들은 - 언제나 그랬듯이 - 지역(도시)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만 집중하지 지역 주민들의 삶에는 무관심하다. 동인아파트 재개발 과정과 그 주민의 실상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시재개발, 재건축, 철거 이주민 양산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국의 정부와 지자체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시장논리에 순응하며 이와 같이 낙후된 구도심 지역을 안전이나 고급화(gentrification), 미화(beautification)의 명목으로 재개발, 재건축을 강행하지만 실제로 정책/정치 엘리트와 개발업자의 이익에 봉사한다.11 그리하여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이념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이러한 소시민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정당한 도시 거주권 및 시민권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시민단체와 예술가들이다. 시민단체나 예술가들은 해당 주민들과 연대하여 도시 정책과 개발을 담당하는 엘리트들과 때로는 대화나 타협, 때로는 토론이나 투쟁을 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적 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반하게 될 문제, 예를 들어, 기존의 주민 참여형 공동체예술의 문제는 - 특히 예술가들이 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지역 주민과 협업하는 경우 -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적 조건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의 일상적 조건을 수용하고 예술가들의 창조적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수용자로 머물게 되는데, 그리하여 예술가들은 도시계획 시스템을 바꾸려는 의도로 출발하지만 결국 그 시스템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흔히 비판받게 된다.12 아래에서 소개하려는 것이 바로 오늘날(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물론) 주요 도시공동체 미l술가와 행동주의 미술가들이 예술적, 투쟁적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대체로 숙지하고 있는 주요 이론적 쟁점과 철학적 담론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도시공동체 미술과 행동주의 미술의 핵심 이론과 쟁점을 살펴보기 위해 앙리 르페브르가 개진한 ‘공적 공간의 생산’과 ‘도시에 대한 권리’의 문제, 자크 랑시에르와 샹탈 무페를 통해 ‘공적 공간의 예술적 개입’과 ‘민주주의’ 등의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오늘날 ‘어바니즘’(urbanism)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도시] 공간은 사회적 산물이다 [……] 그렇게 생산된 공간은 사유와 행동의 도구로 활용되며, 그것은 또한 권력의 통제, 그러니까 지배의 수단이다”라고 분석하며, 이러한 ‘도시공간의 사회적 생산은 오늘날 사회, 즉 자본주의 자체의 재생산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헤게모니를 가진 계급은 자신의 지배를 재생산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러한 공간의 사회적 생산을 장악하려 한다’고 분석한다.13 나아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의 개념에 의거해 - 도시를 ‘다함께 만든 공간’으로, 즉 (사회적 상호관계를 말살하고 도시공간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상품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도시를) ‘삶을 위한 장소’로 전환시키기 위해 시민들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14 또한 르페브르는 모든 사회는 (그 사회에 적합한) 자신의 공간을 산출하는데, 그럴 경우, 스스로 실재하기를 열망하지만 자신의 공간을 산출하지 못하는 모든 사회적 존재는 기이한 실체(strange entity), 즉 지배 이념이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특이한 추상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15 이렇게 볼 때, 도시공동체 및 행동주의 미술가들은, 르페브르와 하비의 이론에 의거해, 도시의 공적 공간은 ‘절대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공간’이기 때문에 그동안 ‘절대적 공간’으로 간주된 도시 공간을 ‘사회적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그리하여 자본주의화(化)된 도시를 ‘삶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시키며 ‘도시에 대한 권리’를 시민들이 정당하게 행사하기 위한 예술적 프로젝트를 창안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공동체 및 행동주의 미술가들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지배로 인해 평등과 공생, 민주주의 가치가 무너지는 도시 현장에 개입하여 보다 민주적이고, 공생적이고 평등한 사회 공동체의 모델을 모색한다. 도심의 공적 공간에 개입하는 예술적 실천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개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은 주로 정부기관은 합의(consensus)의 민주주의를, 미술가들은 불화(dissensus)의 민주주의를 전제하는 데 기인한다. 미술가들이 다양한 공적 공간(public space), 즉 거리, 광장, 플라자, 공동체 마을, 사이버 스페이스 등에 개입하게 될 때, 이견을 가진 시민들 사이에 충돌을 예상할 수 있으며, 이때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우선 공공기관은 공익(public good)이라는 명목으로 공적 공간을 정치적 헤게모니의 방식으로,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 ‘포함과 배제’의 경계 영역을 설정하여 시민들의 지각 및 행동 방식 등을 통제하려 한다. 이렇게 볼 때, 공적 공간은 흔히 기관과 시민 사이의 대립의 공간으로 다뤄지고 논의되는데, 특히 민주주의가 위축되거나 억압된 상황에서 두드러진다. 여기서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이론가, 기획자들은 - 랑시에르나 무페와 같은 동시대 철학자들의 주장에 의거하여 - 민주주의란 합의가 아닌 불화에 있다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공적 공간에 개입(intervention)하며 ‘정치적 불화의 공간’16 이나 ‘논쟁적 공적 공간’17을 개진하려 한다. 요컨대,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원래 배제된 자들이 공적 영역을 주장할 때 성립하며, 갈등, 분열, 불안정은 민주주의적 공적 영역을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존립 조건들이다.
이렇게 볼 때, 민주주의 사회는 갈등이 말살된 사회가 아니라 유지된 사회이다. 대립(antagonism)이 없다면 부과된 권위주의적 질서의 합의(일치)만 있을 뿐이고, 토론에 대한 억압은 민주주의에 대한 장애가 될 뿐이다. 여기서 대립은 정치적 교착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유토피아의 필수 전제로서 이해해야 다.18 이러한 관점에서 공동체 미술가나 행동주의 미술가들이 예술적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 지역의 시민/주민들에게 긴장이나 불안 또는 불편의 감각을 유발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데 이는 다름 아닌 기존의 (비민주적, 억압적) 제도공간에 개입하여 새로운 틈의 장(場)을,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 공적 공간을 개진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리하여 공공미술, 공동체미술, 행동주의미술에 종사하는 미술가들은 이러한 동시대 철학적 담론을 기반으로 어떻게 현재의 지배 (즉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도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지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역에 개입하여,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즉 실험적 퍼포먼스로부터 협업적 모델-제작, 도시탐험, 공동 생산한 오디오 산책, 마을 도서관과 글방 운영, 보물찾기, 도시 아카이브 구축 등의)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대안적 도시 공동체 모델을 모색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가들의 접근방식의 관건이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도시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그들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주체적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데 있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3.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의 미술사적 의의19
위의 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은 흔히 현대미술의 담론과 실천에 따른 도시공동체 미술이나 행동주의 미술의 전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공동체 미술가들이나 행동주의 미술가들은 대개 재개발이 확정되기 이전에 주민들의 권리와 목소리가 향후 재개발이나 도시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주민들과 다양한 형태의 토론, 포럼, 전시, 공연, 시위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동인동인≫의 기획자들과 참여 작가들은 - 2017년 12월 동인아파트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재건축이 결정된 뒤 - 현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인동인≫의 기획자들은 어바니즘 아트나 행동주의 미술의 주요 사례에서 보듯 (예술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프로젝트로 출발하는 데 다소 제한적이었다. 그것은 주민들이 행정기관이나 개발업자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중요한 계기, 즉 민주주의적 절차와 공간을 확보할 시점을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인동인≫은 동인아파트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며 도시공동체 미술이나 행동주의 미술이 갖는 주요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동인아파트 역사에 관한 ‘아카이브 전시,’ 지역 내외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미디어파사드 <마을이동극장>, 조경희 작가의 게스트하우스 <동인아파트에서 하루 밤 잠자기>, ‘대구 메가폰 슈프레히콜’의 <나의 살던 고향은>, ‘37도 정크아트 협동조합’의 생태인형극 <동인그루터기와 백로>, 서분숙의 르포타주 프로젝트 <분꽃글방>, 참여 작가들과 주민 및 아이들의 협업 프로젝트 <행복정원>과 <동인아파트-아이들의 기록> 등이다.20
우선 참여 작가들은 ‘아카이브 전시’에서 동인아파트의 개발과 재개발의 역사, 주민의 삶의 자취,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한 다각적 탐사 및 토론에 기초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21 정승원(인문학자)의 텍스트 연작 <동인아파트, 기억의 몽타주>(1-6)와 권수정(일러스트레이터)의 이미지 연작 <東仁동인아파트 이야기>(그림 3)의 병치는 동인아파트에 얽힌 수많은 추억과 에피소드를 환기하고 있고, 한지와 먹을 활용한 민승준의 습탁 작업 <동인그루터기>와 <동인게스트하우스, 물의 순환>은 오늘날 도시난민, 생태환경의 문제를 소환하고 있으며, 김미련의 영상작업 <272 미완의 인터뷰>(그림 4)는 동인아파트의 역사와 ≪동인동인≫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야심차게 아카이빙하고 있다. 또한 배윤정의 비디오 작업 <흔적>과 오정향의 비디오 작업 <검고도 빛나는 날들의 기억>과 <당신의 집은 어디 입니까?>은 사소한 일상적 삶과 오브제의 흔적을 포착하여 도시공동체 문화의 독특한 문제에 관해 사유하게 하며, 이정의 문패 작업 <東仁동인의 同人동인>은 철거, 이주, 재개발에 앞서 한 번도 자신의 집을 소유하지 못했을 법한 세입자들에게 문패를 달아주며 한시적이나마 ‘집의 안정감’을 갖게 했고, 황인모의 사진 작업 <동인아파트 오르막길>은 연탄문화를 상징하는 나선형통로 등을 피사체로 포착하며 도시공동체 생활양식의 변화과정을 아카이브하고 있었다. 위의 예술가들은 한 지역, 거주공간의 역사에 대한 아카이브의 구성이 -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명확하게 논증한 바와 같이 22 - 결코 객관적 기록이 될 수 없음을 인지하고 각자의 ‘포함과 배제’의 관점에 따라 우리가 꼭 기억하고 숙고해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또한 ≪동인동인≫에서 지역 내외의 5명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동인아파트를 주제로 펼치는 미디어파사드 <마을이동극장>을 만나게 된다.23 이들은 반세기의 연륜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인아파트 (나선형 경사로) 외벽을 배경으로 최첨단 기술매체를 활용한 미디어파사드 영상작품을 차례로 투사함으로써, 즉 낡은 아파트 외벽과 첨단 영상 예술작품의 병치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주민 및 시민관객들로 하여금 동인아파트의 철거와 재개발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새로운 감각, 사유, 태도를 촉발한다. 다니엘 데륵(Daniel Derg)은 <아직, 더 이상 Not now, Any more> (그림 5)에서 세계 곳곳의 도시풍경의 시각적 콜라주를 통해 오늘날 어떻게 (동시대 폐허는 고대 폐허의 반복이라는) 자본주의의 우화가 작동하며 도시는 투기의 무덤이 되고, 영세 주민은 생존권을 잃게 되고, 지역의 문화는 퇴화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허병찬은 소음을 내며 끊임없이 돌아가는 산업기계문명을 배경으로 하고 그 위에 아이러니하게도 산업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가난한 아이들의 정지된 모습을 투사하는 <기이한 풍경>을 통해 재개발에 대한 여러 문제, 즉 재개발 시스템의 폭력성과 서민의 삶, 행복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라지게 될 아파트 구조물과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그 흔적의 기억의 문제를 다룬 손영득의 <흔적은 벗겨지지 않는다>, 아파트 주민의 오랜 일상과 주변 생태환경의 흔적을 추적한 배윤정의 <사라지는 것들>, 아파트 실내공간을 집의 이중성, 즉 물성과 심리의 측면에서 다룬 오정향의 <조각난 풍경... 다시 봄>은 모두 기억과 흔적의 문제를 소위 랑시에르의 (모든 미적, 감성적, 예술적인 것은 우리의 감각, 지각 방식을 바꾸려는 한 정치적 차원을 갖고 있다는) ‘미학의 정치’의 차원에서24 소환하고 있었다.
한편 ‘대구 메가폰 슈프레히콜’은 2019년 대구예술발전소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 ≪대구아트레전드: 이상춘≫을 계기로 결성된 연극단체로서 당시 신고송의 <철쇄는 끊어졌다> (1945)와 창작극 <지금, 여기 타오르는 불>(서분숙, 2019)을 공연했다.25 슈프레히콜(Sprechchor)은 독일어 ‘Sprechen(말하다)’과 ‘Chor(합창)의 합성어로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전파된 집회, 시위 형식의 전위연극이다. 간결한 시구, 합창, 안무의 콤비네이션으로 구성되는 슈프레히콜은 보통 여러 명의 시민/예술가들이 한 팀을 이뤄 거리나 공적 공간에 개입하여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현안을 예술적으로 다루는 집단 시위 예술형식으로 최근 현대예술의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26 ‘대구 메가폰 슈프레히콜’은 지난해 12월 구미에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조 천막농성을 지원하기 위해 <지금, 여기 타오르는 불>을 재연했으며,27 이번 ≪동인동인≫에서는 이현순 극본, 연출로 <나의 살던 고향은>(그림 6)을 공연했다.28 슈프레히콜 <나의 살던 고향은>은 동인아파트 재개발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이슈를, 이를테면, 개발업자(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철거되면 결코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아파트 주민들의 문제를 다뤘다. 일곱 명의 공연자들이 강열한 색채 대비를 이루는 블랙 슈트와 핑크 타이즈를 착용하고 커다란 핸드 메가폰을 통해 ‘집은 인권이다!’라고 합창하며 돈의 개발논리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권을 박탈하고, 인간적인 문화와 인근 생태계를 파괴하는지를 서정적이면서도 신랄하게 보여주었다.
≪동인동인≫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은 ‘37도 정크아트 협동조합’(양민경, 권영해, 정윤주, 안영희)이 공연과 연출을, 서예활동가 민승준이 시나리오와 기획을 맡아 아파트 거실 무대(3동 7호)에 올린 생태인형극 <동인그루터기와 백로>(2019. 11.23.)(그림 7)이다. ‘37도 정크아트 협동조합’은 2019년 주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그림책, 인형, 장난감들을 재탄생시켜 특별한 인형극과 전시회를 기획하고 공연한다’는 취지로 설립되어 정크아트를 중심으로 생태, 문화,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동인그루터기와 백로>에서 버려진 인형 등의 폐자원을 활용하여 동인아파트 마을을 소재로 생태인형극을 올렸다. 이전 아파트 재개발로 서식지를 잃어버린 백로 남매가 동인아파트 인근 신천으로 도피하여 아파트 내의 히말라야시다의 호의로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게 되지만 백로의 분뇨 악취와 짝짓기 소음으로 인해 아파트 주민들이 나무를 잘라버리게 되는데, 이제는 아파트 주민들도 잘려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임박한 철거로 인해 자신의 거처를 걱정하는 처지가 된다는 내용이다.29 <동인그루터기와 백로>는 무분별한 재개발은 백로(동물) 뿐만 아니라 결국 주민(인간)도 사지로 내몰게 됨으로써 동물과 인간은 결국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또한 히말라야시다가 잘리며 백로(동물)가 서식처를 잃게 되었듯이 잘려버린 나무그루터기가 이제 주민(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리하여 모든 생명붙이의 삶의 터전(환경)이 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악화, 심화되고 있는 생태, 난민의 문제를 비판적,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도시공동체 미술의 관점에서 언급할 만한 프로젝트로는 조경희의 게스트하우스 <동인아파트에서 하루 밤 잠자기>(그림 8), 서분숙의 르포 글쓰기 프로젝트 <분꽃글방>, 작가들과 주민들의 정원 가꾸기 프로젝트 <행복정원>, 미술가들과 아동/청소년의 공동 교육프로젝트 <동인아파트-아이들의 기록> 등이 있다. 조경희는 자신의 작업실로 사용하던 아파트(5동 37호 13평)를 전시기간 약 2주 동안 신청자에게 2인 1박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어떻게 단지 안전문제로 철거, 재건축되어야 할 흉물로 간주된 노후 아파트가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면) 실제로 삶의 배려가 담긴 아름다운 거주공간으로 체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무료숙박의 조건으로 SNS에 올라온 게스트들의 후기는 어떻게 재개발이 흔히 서민의 희생을 강제하는 최상층 엘리트의 시각에 불과한지를 방증한다.30 서분숙은 <분꽃글방>(그림 9)에서 자신의 동인아파트 작업실(3동 7호)을 글방으로 오픈하고, 참여 작가 및 아이들과 함께 동인아파트를 비롯한 인근의 칠성시장, 신천, 노점 등을 탐사하고 이들에 대한 르포 글쓰기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들은 다양한 르포타주 작업을 통해 ‘서민들의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된 박물관 같은 아파트’가 오늘날 어떻게 신자유주의 개발논리에 의해 ‘낡고 볼품없는 흉물, 주변의 지가 상승을 가로 막는 걸림돌’31로 각인되어 철거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인식하고 기록했다.
동료 작가 및 아이들과 함께 동인아파트와 인근 지역에 대한 르포타주 프로젝트와 더불어 진행된 것이 바로 <동인아파트-아이들의 기록>(그림 10)이다.
민승준, 김미련, 서분숙과 동인아파트 주민/아이들이 민승준의 ‘서예도서관’과 서분숙의 ‘글방’에서 여러 차례 모여 책읽기, 토론, 회의, 예술교육, 작품 제작 등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물을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삼삼다방 갤러리(2018.7.24~7.30)와 남부도서관 갤러리(2018.10.29~11.11) 등에서 전시했다.32 전시회에서 아이들이 읽고 토론한 책들, 아이들이 마을탐사 결과를 예술적 손동작, 즉 문지르기(동인아파트 탁본하기), 떠내기(동인아파트 바닥, 벽, 물건을 점토로 본뜨기), 지우기(동인아파트 신문기사와 부동산매물정보) 등으로 제작한 다양한 작품,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진행된 ‘동인아파트 8경 엽서,’ 동인아파트 다큐멘터리 영상, 동인아파트 맨홀뚜껑 판화전사 작업, 민우혁의 드로잉 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한편 김미련과 서분숙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동인아파트(5동)에서 펼친 정원가꾸기 프로젝트 <행복정원>도 주목할 만하다. 임박한 동인아파트 철거에 아랑곳없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꽃밭을 정성스레 가꾸고, 화분에 파나 고추를 심고, 조약돌로 길가를 예쁘게 단장하는 어느 할머니의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본 김미련 작가가 제안하고 서분숙의 동참으로 시작된 <행복정원> 프로젝트는 놀랍게도 아파트 주민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참여를 끌어내게 된다. 그들은 꽃씨와 서분숙의 시(詩)를 작은 봉투에 넣어 (조경희의 ‘게스트하우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 손님들에게 나눠주며 이러한 민초들의 삶의 희망, 행복의 꿈, 생명력이 널리 퍼져나가길 기원했다.
이러한 일련의 도시공동체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워주고, 시민 관객들에게 신자유주의적 도시개발에 따른 도시의 브랜드화가 필히 소수 특정집단의 이익과 다수 주민들의 고통으로 귀결되는지를, 따라서 민주적 시민공동체 사회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인지하게 하고, 대안적 도시공동체의 모델을 함께 모색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러한 도시공동체 및 행동주의 미술이 21세기 들어 (이전 세기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교묘하게, 대범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동시대가 그만큼 신자유주의에 종속된 정도에 비례하며, 그만큼 사회적,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된다. 이것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미술의 기능이 변해왔다는 미술사적 명제를 실증하는 대표적 실례이다. 위에서 이광석의 <옥상의 미학노트>(2016)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한국에도 21세기에 들어 다양한 아티스트 콜렉티브나 행동주의 미술가들이 출현하여 다각적으로 활동해왔다.33 그렇지만 대구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면 도시의 공적 공간에 개입하여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다룬 예술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제한적이다. 예를 들면, 2014년 온아트(OnArt)와 디카(DICA)가 약 2년에 걸쳐 준비한 대구지하철화재참사 11주기기획전 ≪CMCP≫에서 참여미술가들이 대구 도심의 세 곳, 즉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와 동성로 거리,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도시개입적 예술 프로젝트를 펼친 바 있고,34 로컬포스트가 2017년 10여 명의 행동주의 미술가들과 함께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성주사드반대 프로젝트’를 전개했고 그 기록물을 전시한 것 정도이다.35 ≪동인동인≫의 미술사적 의의는 바로 이러한 현대미술의 실천과 담론의 맥락에서 평가되고 기록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DonginDongin-linked≫: Urbanism, Art Activism, Democracy Kim, Kisoo (Art Critic)
The goal of this paper lies in examining the significance of the nearly two-year long project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 / DonginDongin-linked≫ (2019.11.18~11.30) in which a bevy of local art collectives have practiced diverse art projects related to urban community art and activist art since 2018. These groups of art collectives, including artists, residents/citizens, reportage writers and humanists, have carried out such diverse projects as archives, sprechchor, ecological puppet show, media facade, guest-house, reportage writing school, collaborative gardening, etc. ≪DonginDongin- linked≫ came to empower local residents and citizens by dealing with such issues as urban community, public space, and democracy on which the historical orbit of the half-century old but soon-vanishing Dongin Apartment Complex(1969-2020) urged all of us to reflect. In the context of ‘global turn’ of art from formal and aesthetic Modern art to conceptual and critical Contemporary art, this paper sets out to elucidate the Korean and local art-historical meanings of ≪DonginDongin-linked≫especially in terms of Henri Lefebvre's notions of ‘public space’ and ‘the right to city,’ Jacques Ranciere's concepts of ‘politics of aesthetics’ and ‘democracy of dissensus,’ and Chantal Mouffe’s notions of ‘agonistic space’ and ‘artistic intervention.’
1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2019.11.18~11.30)은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 3가 282번지에 위치한 동인아파트에서 전시관(2동 37호), 슈프레히콜 <나의 살던 고향은>(3동 나선형계단, 2019.11.23), 생태인형극 <동인그루터기와 백로>(3동 7호; 2019.11.23), 미디어파사드 <마을이동극장>(3동 나선형계단외벽; 2019.11.23), 게스트하우스 <동인아파트에서 하루 밤 잠자기>(5동 37호), 르포글방 <분꽃글방>(3동 7호)과 <행복정원>(5동 앞뜰)과 ‘아카이브 전시’(봉산문화회관 2전시실; 2019.12.04~12.08)로 구성되었다.
2 ‘슈프레히콜’(독일어, Sprechchor)은 또한 외래어의 한글표기법에 따라 ‘슈프레히코어’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신고송과 이상춘이 1932년 처음 이 용어를 ‘슈프렛히․콜’로 번역, 소개한 이래 학계(권영민 교수 등)에서 ‘슈프레히콜’로 정착시켜 논의해왔기 때문에, 이에 따라 ‘슈프레히콜’로 표기한다. 신고송/이상춘, 연극운동, 1권 2호, 1932, p. 5;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pp. 473-74.
3 Terry Smith, What Is Contemporary Art?,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Art To Come: Histories of Contemporary Art,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9; 김기수, 「‘1989년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동시대성’의 문제: 미술사적 담론을 중심으로」, 현대미술학논문집, 제21권 1호, 2017, pp. 53-112; 「한국 현대미술의 시대구분의 재정립의 문제: 컨템퍼러리 아트의 담론을 중심으로」, 현대미술학논문집, 제23권 1호, 2019, pp. 35-62.
4 이 논문에서 ‘미술’이란 용어는 (심미적, 형식적, 조형적 가치를 추구하는) 아카데믹 아트나 모던 아트의 ‘파인 아트(fine-art)’가 아니라 컨템퍼러리 아트의 ‘아트(art)’를 지칭하며, 이때 미술(art)의 개념은 탈장르, 융복합에 의해 확장된 개념으로서 인접예술(즉, 문학, 연극, 음악, 무용 등)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인류학, 과학, 법학, 공학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자유롭게 결합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동시대 삶/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관계한다.
5 Guy Debord,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trans. Donald Nicholson-Smith, New York: Zone Books, 1995, pp. 11-24.
6 Boris Groys, On the New, trans. G.M. Goshgarian, New York: Verso, 2014.
7 김기수, 「‘1989년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동시대성’의 문제」, 현대미술학논문집 제21권 1호, 2017, pp. 53-112. 현대미술의 계보는 1960, 70, 80, 90년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의 주요 철학, 즉 포스트모더니즘(예, 페미니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등), 탈구조주의(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질 들뢰즈 등), 동시대 철학(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샹탈 무페 등), 탈식민주의(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 월터 미뇰로 등) 등의 이론과 긴밀하게 연관해 전개되어왔다.
8 이광석, 옥상의 미학노트: 파국에 맞서는 예술행동탐사기, 현실문화, 2016. 구체적으로 연분홍치마(김일란, 홍지유, 한영희, 이혁상, 김성희)는 2003년부터 성소수자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성적 위계화와 사회의 권력구조의 문제를 다뤄왔으며,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주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실행해왔고, 리슨투더시티(박은선, 권아주, 정영훈, 김준호)는 2008년 촛불시위의 영향으로 2009년에 결성되어 신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문제를 다뤄왔고, 옥인컬랙티브(이정민, 김화용, 진시우)는 옥인아파트의 철거문제와 연관된 일련의 재개발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9 그 외에도 2009년 무렵 지역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한 ‘방천시장 프로젝트’ 등이 있는데, 이들은 지역 활성화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행정기관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한 만큼 온전한 정치적 미술 프로젝트로서의 도시공동체 미술이나 행동주의 미술의 사례로 거론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10 서분숙, 「동인아파트, 오십 년 세월의 결은 아름다웠다」, 평화뉴스, 2019년 8월 1일.
11 Rosalyn Deutsche, Evictions: Art and Spatial Politics,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96.
12 Harriet F. Senie and Sally Webster, eds., Critical Issues in Public Art: Content, Context, Controversy, New York, NY: HarperCollins, 1992.
13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trans. Donald Nicholson-Smith, Oxford: Basil Blackwell Ltd., 1991, p. 26.
14 David Harvey, “The Right to the City,” New Left Review, Vol. 53, 2008.
15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p. 53.
16 Jacques Ranciere, The Politics of Aesthetics: The Distribution of the Sensible, trans. Gabriel Rockhill, New York: Continuum, 2004; 김기수, 「랑시에르의 ‘비판적 예술’에 관하여: 예술적 전략의 문제를 중심으로」, 철학논총, 제83권 1호, 2016, pp. 1-31.
17 Chantal Mouffe, “Agonistic Politics and Artistic Practices,” Agonistics: Thinking The World Politically, New York: Verso, 2013, pp. 85-105.
18 Ernesto Laclau and Chantal Mouffe,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Toward a Radical Democratic Politics, London: Verso, 1985, pp. 122-27.
19 Peter Osborne, “Art Beyond Aesthetics: Philosophical Criticism, Art History and Contemporary Art,” Art History, Vol. 24. No. 4 (September, 2004), pp. 651-670. 피터 오스본에 의하면, 컨템퍼러리 아트의 담론과 실천에서 (전시) 비평은 - 동시대성의 (한낱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역사적 규정에 관계하는 만큼 - 곧 미술사이며 미술사를 대체한다.
20 ‘2019 동인아파트 프로젝트’ 과정 기록 영상,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UiMfZGVNB84&feature=youtu.be&fb clid=IwAR10KPRZFv4gvhvQY6n4SLV9Lt3G3hTCVO6eAsiM7ZhJtcpAaFzEu0_ecBM.
21 동인아파트에 관한 ‘아카이브 전시’는 동인아파트 단지(2019.11.18~11.30)와 봉산문화회관(2전시실, 2019.12.4~12.8)에서 두 차례 열렸다.
22 Michel Foucault, “The Statement and the Archive,”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trans. A.M. Sheridan Smith, New York: Pantheon Books, 1972, pp. 79-131; Jacques Derrida,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trans. Eric Prenowitz,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23 https://youtu.be/C_X850rDIdY
24 Jacques Ranciere, The Politics of Aesthetics, pp. 82-90; 김기수, 「랑시에르의 ‘비판적 예술’에 관하여」, pp. 6-8.
25 김기수 외, 대구아트레전드: 이상춘, 대구예술발전소, 2019. <지금, 여기 타오르는 불>(대구예술발전소 1층 로비, 2019.7.20) https://www. youtube.com/watch?v=4UWlSC_ywAM; <철쇄는 끊어졌다>(오프닝공연, 대구예술발전소 1층 로비, 2019.6.26). https://www.youtube.com/watch?v= n2WJb2pe_Tw.
26 권영민, “슈프레히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pp. 473-74.
27 https://www.youtube.com/watch?v=LIpH-4BbV-8&feature=youtu.be&app =desktop
28 동인아파트 3동 나선형 계단 앞마당, 2019.11.23. https://youtu.be/HxnsYGef3PQ; 봉산문화회관 2전시실, 2019.12.4.오프닝공연 https://youtu.be/-4WSreHh2u8.
29 https://www.youtube.com/watch?v=h2v8wsgVmsw
30 조경희의 <동인아파트에서 하루 밤 잠자기> 게스트하우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스트들의 방대한 분량의 ‘SNS 후기’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https://de6e87df-bcaa-4aaf-8c87-025f5dcfd3ef.filesusr.com/ugd/9f0855_ 2b1f95f41caf4aa59f292e07ba0001c6.pdf
31서분숙, 「동인아파트, 오십년 세월의 결은 아름다웠다」, 평화뉴스, 2019년 8월 1일.
32 2018 <동인아파트 아이들의 기록>
1기 https://www.youtube.com/watch?v=BiHAIgLgQcE; 2018 <동인아파트 아이들의 기록>
2기 https://www.youtube.com/watch?v=_z8SfFNfB7I&t=23s; 2018 <동인아파트 아이들의 기록>
3기 https://www.youtube.com/watch?v=qqfDypntmMI&t=47s.
33 이광석, 뉴아트행동주의: 포스트미디어, 횡단하는 문화실천, 안그라픽스, 2015.
34 김기수, CMCP(대구지하철참사 11주기기획전), DICA Press, 2015; 「현대미술에서 ‘예술적 형식’과 ‘정치적 공간’: CMCP전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논문집, 제18권 1호, 2014, pp. 7-69. ≪CMCP≫(2014.02.12~ 03.08)는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며 유족들의 아픔과 남겨진 문제가 시민들의 뇌리로부터 점차 잊히게 된 상황에서 지역내외의 약 2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전략, 형식,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을 통해 참사현장을 비롯한 도심의 공적 공간에 개입하여 시민들과 ‘기억과 소통의 장’을 개진한 기획전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위의 논문과 도록을 참조.
35 김기수, 「≪2017 갑질박멸 예술난장≫의 제도비판적 의의와 과제」, 현대미술학논문집, 제22권 2호 2018, pp. 87-91. 대구 및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 및 행동주의 예술 활동을 펼쳐온 로컬포스트는 일군의 예술 행동주의자들과 함께 성주 소성리 현지에서 장기간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사드반대 투쟁을 함께 벌일 뒤 그 결과물과 기록들을 두 차례, 즉 ≪THAAD영신展≫(일명 ≪미련싸드 진퇴양난≫; 성주소성리마을회관 2층, 2017.12.27~2018.1.17)과 ≪THAAD Breaker≫(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과 삼삼다방 2018.1.18~2.10)를 전시한 바 있다.
* 이 글은 2020년 3월 31일에 발간된 『인문연구』(제90호 1호 http://dx. doi.org/10.21211/JHUM.90.7)에 게재된 것으로 여기에 재수록한다. 재수 록을 허가해준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