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영화읽기3              <아가씨> 푸른 수염 성의 완벽한 탈출기                애니메이터 안주영 감독

 

                                   

하녀인 숙희를 아가씨 히데코로 위장해 정신병원에 가두고 히데코는 이모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숙희로 신분세탁을 하기 직전 공모자 가짜 백작 후지와라에게 묻는다. “우리 숙희 혼자 집 떠나서 그런 곳에서 참 불쌍하다.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해 본적 있나요.” 그의 동정심에 대한 질문이다. 히데코는 ‘손에 불을 대면 저절로 앗 뜨거워’하듯이 본능적으로 백작이 ‘무섭다’고 숙희에게 인물평을 했었다.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고 망설임이 없는 자신만만한 부정이다. 변태성욕자를 넘어 연쇄 살인범으로 추측되는 이모부를 유일한 보호자로 둔 히데코는 이미 이모부와 혼인하기로 결정돼 지하실에서 살해당하고 자살로 위장된 이모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을지 모른다. 죽지 않고는 지하실에 내려갈 수 없게 만들어 준다는 아편을 향해 뻗었던 히데코의 손동작은 무슨 보석이라도 움켜쥐듯 재빠르고 욕망에 넘치지 않았던가. 푸른 수염을 연상시키는 이모부의 오직 잔인함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그 ‘미’가 알리바이가 된 변태적 공간에 들어와 히데코에게 탈출을 제안하는 후지와라 백작은 하필이면 사기꾼이다. 그것도 냉혈안인 사기꾼. 하지만 히데코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와 손을 잡아야 한다. ‘더’ 무서운 이모부의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가짜 백작 후지와라는 이모부가 신분상승을 위해 몰락한 일본 귀족 이모와 결혼했듯이 히데코의 상속재산을 탐내 똑같이 신분상승을 위해 청혼한 예비 된 푸른 수염이다. 그의 사랑은 자신의 매혹으로 충분하며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다. <아가씨>는 1부에서는 숙희와 후지와라의 공모, 2부에서는 히데코와 후지와라의 공모로 이어지는데 서로 속고 속이는 플롯 속에서 히데코가 추구하는 것은 명백하게 관계의 진실성이다. 결국 숙희를 사랑하게 된 히데코가 “내가 백작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내가 후지와라와 결혼했으면 좋겠어?”라고 다소 저자세로 질문할 때 자신과의 사랑의 진실을 외면하는 숙희를 바라보는 눈은 서슬 퍼런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숙희가 이를 부정하자 유일한 긍정적 관계의 희망을 잃은 히데코는 이모가 매달렸던 나무로 달려간다. 1,2부 모두 공모의 제안자임에도 불구하고 후지와라가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처음부터 자신의 청혼의 이유를 솔직하게 밝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철저하게 세속적인 인물이라는 점에 있다. 그가 신분상승의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는 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지체된다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 외에 갈등은 없으며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근대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배경이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고려하고 또 이모부의 변태성을 생각하면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으나 그에게 전형적 세속성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새로 하녀로 온 숙희에게 히데코는 “거짓말만 하지 마.”라고 당부했었으나 히데코가 원한 것은 솔직함이라기보다는 태도의 순수성에 있었다.

영화 <아가씨>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곳은 숙희가 코우즈키의 서재를 파괴하는 장면일 것이다. 단지 책 내용이 외설적이라는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서재를 꾸민 방식이 방문객들을 대비한 위장일 뿐 아니라 과시적이라는 점에서 가식적이며 ‘낭독회’라는 단어가 주는 의도적인 위장술을 생각하면 이 책들은 분서갱유의 자격이 없다. 그렇기 때문인지 코우즈키 서재의 책들은 처음에는 숙희에 의해 그리고 히데코의 동참에 의해 파괴되고 수장된다. 이모부 코우즈키의 세계는 인공적 아름다움으로 포장되기는 했으나 ‘아름다움’을 그저 잔인한 것이라고 의심 없이 당당하게 정의할 만큼 그는 드러나는 화려함에 비해서 내적으로는 협소하며 왜곡되어 있다. 춘화 책을 점잖은 책들로 보이도록 위장한 서재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겠다고 가짜 일본인 백작 후지와라의 목 떨림까지 모방하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에서 그가 계속해서 가짜에 매료됨을 볼 수 있다. 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지는 권력관계의 우위 즉 가부장적 질서 때문에 그의 강압적이고 한편으로는 폭력적인 세계가 히데코와 그녀의 이모를 비롯한 집안사람들에게 강제되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1,2부의 후지와라와 숙희, 후지와라와 히데코의 공모는 히데코와 숙희의 동맹으로 끝나며 히데코의 숙희로의 신분세탁이 아닌 후지와라로의 신분세탁으로 이어진다. 히데코와 숙희의 동맹은 숙희의 히데코에 대한 후지와라와의 공모를 고백함으로써 가능했다. 후지와라는 공모의 첫 아이디어를 내었고 끝까지 히데코 편에 서고자 했음에도 결국 배제당하고 말았다. 그는 히데코의 중요한 질문 즉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숙희에 대한 동정심 질문에 자기성찰에 대해 무심했으며 히데코에 대한 자신의 사랑고백에 대해 히데코가 “사기꾼이 사랑을 하나요?”라고 반문했을 때 자신을 충분히 변호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변호하지 않았다. 후지와라는 히데코의 재산 뿐 아니라 그녀에게 매혹되었다고 느꼈음에도 자신의 욕망충족에만 관심이 있을 뿐 히데코와의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전근대적 성적 관념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히데코와 강제적 관계를 맺으려 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코우즈키에게 고문을 당할 때 후지와라가 뱉은 말들은 한편으로는 유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근대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히데코가 이모부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사회질서 속에서 그가 필요했지만 욕구가 충족되자 이모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후지와라는 더 무서운 존재가 되기 전에 이모부에게 버려졌다.

애니메이터 안주영감독 

경북대 사회교육학과 졸업,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연출 전공 졸업, <선잠> 애니메이션을 부천국제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 상영,

<쫑> 애니메이션을 인디포럼 여성인권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에 상영한 바 있다. TV비평 공모에 당선, 매거진t (2007.10~2008.6)연재

                                                                                   

bottom of page